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웨덴/역사/바사 왕조 (문단 편집) ==== 30년 전쟁 참전과 갑작스런 전사 ==== AD 1618년 [[보헤미아 왕국]]에서 극단적인 로마가톨릭 성향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페르디난트 2세]]의 지배를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키면서 '[[30년 전쟁]]'이 발발했다. 그리고 [[체코인|보헤미아인]]들이 대표적인 프로테스탄트 제후인 [[팔츠 선제후국|팔츠]]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를 AD 1619년 11월 자신들의 왕으로 옹립했으나 AD 1620년 11월 빌라호라 전투에서 [[요한 체르클라에스 폰 틸리]]의 가톨릭 동맹군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이후 프리드리히 5세는 보헤미아에 이어 AD 1623년에는 본래 영지인 [[팔츠 선제후국]]까지 상실한 채 [[네덜란드 공화국|네덜란드]]로 망명을 떠나야 했다. 그러자 신성 로마 제국의 홀슈타인 공작을 겸하고 있던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4세]]가 프로테스탄트 세력을 지원하기 위해 30년 전쟁에 개입했지만 AD 1626년 8월 루터 전투에서 페르디난트 2세가 고용한 용병대장 [[알브레히트 폰 발렌슈타인]]에게 대패를 당했다. 설상가상으로 AD 1627년 알브레히트 폰 발렌슈타인과 틸리 백작 요한 체르클라에스에게 [[유틀란트 반도]]까지 점령당했고 AD 1628년 볼가스트 전투에서 또다시 패배하면서 크리스티안 4세도 전쟁 지속의지를 상실했다. 결국 AD 1629년 5월 뤼베크 조약을 체결하고 모든 실지를 돌려받았지만 더이상 30년 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만 했다. 이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과의 전쟁에서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페르디난트 2세와 앙금을 가지게 된 구스타브 2세 아돌프가 30년 전쟁에 개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동안의 군제 개혁과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과의 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보병, 기병, 포병의 3병 협동 전술을 앞세워 AD 1631년 9월 [[브라이텐펠트 전투]]에서 틸리 백작 요한 체르클라에스에게 대승을 거뒀고 AD 1632년 4월 라인 전투에서 틸리 백작 요한 체르클라에스를 전사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AD 1632년 5월 알브레히트 폰 발렌슈타인과 벌인 [[뤼첸 전투]]에서는 전투 자체는 승리를 거뒀지만 구스타브 2세 아돌프는 전사하고 말았다. 그리고 구스타브 2세 아돌프에게는 아들은 없었고 6살의 어린 딸인 크리스티나만 있었기 때문에 스웨덴은 큰 위기를 맞이하는 듯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